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릴적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나는 그래도 할아버지의 악착같은 생활력에 밥 세끼 잘먹을 수 있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진학을 했다.
대부분 또래 아이들은 밥 세끼도 제대로 못먹고 중학교 진학은 반 정도만 했다.
내가 56년생이니까 내 나이 위 아래로 많은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베이비부머 시대가 서서히 은퇴를 하고 노인이란 얘기를 듣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60년대에 농사와 알뜰함으로 삼촌 둘을 대학까지 보낸분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공부 잘해라고 가방을 사주시고 가끔은 운동화까지 사주셨다.
그런데 또래 아이들이 자기네는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면서 날더러 똥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놀려대서 언젠가는 나도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기도 했다.
내가 초등하교 5학년 무렵 또래 아이들끼리 토요일에 냇가에서 고기를 잡자고 약속하고
유리 어항(당시 우리는 벅스라고 했다)을 사야하니 각 자 얼마씩 거출을 하기로 했다.
그 값이 30원쯤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각 자 7-8명이 4-5원씩 내면 살 수 있었다. 나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닭장 안에 몰래 들어가서
얼른 달걀 한 개를 훔쳐서 주머니에 넣고 다음 날 점방(가게)에 팔아서 7원을 받아 공금 냈고
나머지는 사탕을 사먹었다.
마침 토요일 그날이 현재 순천에 있는 괴목 5일 장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우리는 당당히 만나서 그릇가게에 가서 유리 어항을 샀고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동네에 도착해서 점심 먹고 동네 어귀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누구는 된장, 누구는 밥한술, 누구는 고기담을
주전자 등등 역할을 정하고 헤어졌다.
한 시쯤 어귀에서 만난 우리는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냇가로 향했다.
그 때만 해도 냇물에는 고기들이 참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 짓을 했지만 고기가 알을 돌무데기에
듬뿍 붙여 놓으면 그걸 파괴하기도 했다.
냇가에 도착해서 어항에 된장과 밥풀데기를 섞어 넣고 물속에 넣으려는 순간 뒤뚱거리며 주전자와 부딪히고
만 것이다. 찡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 조각난 어항을 물끄러미 모두들 바라보고만 있을뿐 말을 잊었다.
..... 어린 우리가 무슨 고기를 잡아 먹는다고... 헛웃음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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