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고 있다.
나는 가을이 좋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燈火可親(등화가친)의 계절 등 많은 수식어를 갖고있다.
한 해 농부의 고단함을 보상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 내내 습한 공기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가을은 산뜻한 공기와 신선한 햇빛을 준다.
88올림픽 때 유럽인들이 한국의 가을 태양에 맘껏 매료되어 윗도리를 벗고 일광욕을 하던
모습이 선하다. 이렇게 좋은 대한민국이 부럽다고 했다.
가을이 되면 무엇보다 어릴적 고향 생각이 난다.
벼가 머리를 숙여 누렇게 되면 낫으로 일일이 베었고, 소가 이끄는 달구지에 가득 싣고 집으로
운반을 한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부자 소리를 듣고 살았기에 마당 곳곳에 볏단이 둥그렇게 여러 개
쌓여 있었다.
그런 좁은 공간에서도 주먹만한 공으로 축구를 했고 재미있게 놀았다.
당시에 선진국인 덴마크나 유럽 같은 곳에서는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와 아주 머-언 이야기로 들렸다.
정말로 우리 세대는 변화의 물결을 직접 경험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우리나라도 이제 농기계가 없으면 농사는 꿈도 못꾼다.
어릴 때는 정말로 엄마가 있어서 좋았다.
모든 걸 기대할 수 있었고 애로사항이 있으면 어떻게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눈치없는 애비의
틈바구니 속에서 해결해 주었다.
아, 어머니
너희들이 커서 뭘 해서 먹고 살까? 부단히도 걱정하셨던 어머니.
우리 형제들 잘살고 있습니다. 살아 계시면 기껏 87세신데 워낙 남편이란 사람을 잘못 만나 모진
시집살이에 폭력 피해도 많이 당했지요. 어릴 때지만 왜 내가 애비를 말리지 못했는지 서럽습니다.
가을이 오면 내게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가을은 내게 서럽고 쓸쓸함을 준다. 왠지 삶이 허전하고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길에 남는 것이
없게 느껴진다.
인생 무상.
아마도 내가 다음에 죽을 때는 분명 가을이 될 것 같다.
늦가을은 내가 태어난 때이다. 그 때 조용히 인생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또한 내가 왔다 간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아들에게 분명히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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