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하며 험란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뭔가 해보려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사회적응선이 가로 막았다.
77년 운전 면허를 따면서 사회 적응할 수 있었는데
남들은 연애도 잘하던만, 나는 왠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학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애인을 옆에 두고 팔짱을 끼고 다녔지만
나는 내 자신이 초라해서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전처를 만났다.
배우지 못한 여자였지만 나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결혼해도 그런 마음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부터 느낀건데 도저히 남과 어울리는걸 무척 싫어했고
밖에 나가 삼겹살 한 끼라도 먹을라 치면 그 돈이면 집에서 얼마든지 먹는데 왜 외식을
하느냐고 윽박질러 내가 우기면 싸움나니까 그저 양보하면서 살았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까 그게 병이었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남을 엄청 험담하는 습관이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술을 퍼먹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내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내가 하늘에 맹세코 가정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아내 장사하며 고생하니까 직장에서 놀러가는 행사가 있어도 빠질 때가 많았다.
인간의 마음이 같이 산 마누라도 나와 같지 않다는걸 뼈저리게 느낄 때는 이미 늦었다.
지나온 시간을 회상해 보면 내가 82년 대학 총학생회장을 하고 있을 때 식품 영양학과
모 여학생이 참하고 예뻤는데 왜 그 여자와 교제를 시작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성격에 가장 큰 단점이 있는데, 바로 쓸데없는 잔 정이다.
버릴 때는 과감히 버려야 하는데 그 놈의 잔 정 땜에 인연을 쉽게 포기 안한다.
젊은 시절에 주변 여자들을 보면서 한 두번 짝사랑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만
과감히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왠지 내 자신이 못난 것 같아 감히 엄두를 못냈던
성격이었다.
세상 살아보면 어떤 여자든 남자든 거기서 거기인데 사회에서 한 자리 차지하면 엄청
우러러 보고 존경하는 마음에 접근을 두려워 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떤 일에 엄청 뛰어난 소질을 가졌더라도 다른 분야는 내가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느낀건데 인생의 행복은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내 몸을 건강히 지키며
가정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는게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더라.
인생 행복 조건은 건강과 경제적인 면을 충족시키는 건실한 직장, 그리고 올바르게 크는 자녀,
그리고 가족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가장이 리드를 잘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가정을 만들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나는 사내 아이 둘이라 어렸을적부터 많이 데리고 다녔다. 2:1로 한강변에서 재밌게 축구했던
기억도 나고 탁구도 문화센터에서 많이 했고 인생 경험자로 아이들 눈높이에서 놀아줬다.
60이 넘는 나이에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 보면서
젊은 청춘 시절에 주변에 있었지만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했던 예쁜 여자분들이 그리워 진다.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과감히 댓쉬를 했더라면 사귀어 볼 수도 있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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